20kg 쌀부대 자루로 지은 집, 보셨나요?
건축 초보인 제가 전남 장흥에 어스백 하우스(Earthbag House)를 지었습니다
08.02.10 12:03 ㅣ최종 업데이트 08.02.10 18:32 김성원 (windtalk)
20kg 쌀부대로 집을 지었다고? 맞다. 정확히 쌀 20kg을 담을 수 있는 쌀부대다. 쌀포대, 마대자루, 쌀자루 등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1600여 장의 쌀부대에 흙을 담아 집을 지었다. 흙부대 집! 소위 어스백 하우스(Earthbag House)이다.
 
아내와 함께 나는 2007년 3월 일산 신도시에서 남쪽 끝 전남 장흥으로 귀농했다. 농사할 땅도 없이 간신히 집터만 구하고 무작정 귀농한 터라 우선 집부터 짓기 시작했다. 단 6개월만 허락받은 빈집에 일단 짐을 부리고 서둘러 집을 짓기로 했다.
 
평소 친환경주택에 관심을 두었던 터라 원래는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를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볏짚단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지난 가을에 소먹이로, 거름용으로 모두 가져간 터라 집 지을 볏짚단이 이듬해 봄까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이런 낭패가…. 그럼 대안은? 그래 바로 그거야 어스백 하우스(Earthbag House)! 이렇게 순식간에 어스백하우스란 희한안 공법으로 결정된 나의 집짓기는 시작되었다.
 
  
▲ 쌀부대로 쌓은 벽 쌀부대에 흙을 담아 벽을 쌓다.
ⓒ 김성원
어스백
어스백 하우스(Earthbag House) 건축 공법은 1984년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시작되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달에 건축물을 짓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던 중 이란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네이더 카흐릴리(Nader Khalili)가 달에 있는 흙을 부대에 담아 쌓자고 한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네이더 카흐릴리는 칼어스(CalEarth) 센터를 세우고 이 방법을 본격적으로 건축물에 적용하는 연구 및 보급을 시작했다.
 
어스백(Earthbag) 건축은 한마디로 전통 담틀공법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유연한 형태의 담틀공법'이라 할 수 있다. 전통방법이 나무나 철판 담틀을 쓰는데다 곡선 구현이 어려운 반면 이 방법은 PP(polypropylene) 부대나 PP 튜브를 틀을 삼아 흙을 넣고 다져 벽체를 쌓기 때문에 곡선구현이 가능하고 담틀을 조립했다 해체하는 수고로움이 없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시작된 어스백 하우스 
 
  
▲ 공이 흙부대 다짐 공이
ⓒ 김성원
어스백
사실 흙부대나 모래자루는 1세기 전부터 군사용 참호나 홍수 방제용으로 사용되어왔다. 네이더 카흐릴리 이후 독일 건축가 프라이 오토(Frei Otto)와 카젤(Kassel) 대학의 거노트 밍케(Gernot Minke), 오언 가이거(Owen Geiger) 박사가 흙부대와 흙튜브를 이용해서 본격적으로 건물들을 짓고 있다.
 
그 외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전남 장흥에 지은 집 역시 그러한 시도 중의 하나라면 하나인 셈.
 
어스백하우스의 유래에 대해서 알 리 없는 마을 사람들이 야단났다. 신기한 듯, 믿기지 않는 듯. 평생 목수로 수백 채 집을 지어왔다는 오산 어르신은 혀를 끌끌 차며 한소리 하신다.
 
"어이 자네 어디 전쟁이라도 났나? 참호라도 지을 참인가벼."
"허 참 별스럽게도 집을 짓네…."
 
 
  
▲ 지붕공사 흙부대 벽체 위에 샌드위치 판넬지붕 공사
ⓒ 김성원
어스백
사실 어스백 하우스는 1995년 ICBO(국제건축회의사무국)의 감독한 실험과 2006년 '가이거 지속가능건축물 조사연구소'의 요청에 따라 실시된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 기술부서의 모의 실험에서 안정성이 검증됐다. 
 
"아재 안 무너진다니까요. 흙부대 한 줄 쌓을 때마다 철조망 깔면 끄덕없어요. 철조망이 몰탈 역할을 하고 인장력도 높여주고 벽체를 일체화해서…."
 
마을 노인장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들은 둥 마는 둥 혀만 끌끌 찼다.
 
미 육군사관학교에서 검증된 안정성
 

  
▲ 미장 전 미장 직전 상태
ⓒ 김성원
어스백하우스

어스백 하우스(Earthbag House)의 장점을 꼽으라면 무엇보다도 경제적이며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건축할 수 있는 생태적인 대안주택이라는 점. 그리고 벽체의 두께가 45cm 이상이기 때문에 단열과 축열 효과가 높다. 요즘 마을 사람들이 집에 마실 오면 제일 부러워하는 게 웃풍없이 따뜻한 방이다. 사실 옛날에 지은 시골집들은 단열이 잘 안 되어 여간 추운 게 아니다.
 
방음효과 역시 높다. 동네에서 상이 났는데 삼일장을 치르는 날까지 곡소리며, 마을 방송 소리 한 번 못 듣다가 어느 날 창밖으로 묘 쓰는 걸 보고서야 부리나케 쫓아나가 새로 이사 온 동네 사람 노릇을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 창 흙부대 창
ⓒ 김성원
어스백

어스백 하우스(Earthbag House)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무척 단순하고 쉬울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집 지어본 경험이 없는데도 아주 간단한 자료만을 참조하면서 지을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지극히 단순한 건축 방법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오해 말기를. 집 짓겠다는 사람치고 집 짓기와 관련된 책 두서너 권 안 본 사람 없다. 그래도 기본지식은 필요하다.
 
초보자도 지을 수 있는 단순한 건축공법
 
  
▲ 흙미장 부대자루 위에 진흙미장을 하다
ⓒ 김성원
어스백
 
  
▲ 마을 울력 마을사람들이 함께 미장을 돕다.
ⓒ 김성원
어스백
흙부대로 벽체를 쌓는 걸 제외하면 사실 어스백 하우스는 그리 별다른 집짓기가 아니다. PP부대로 쌓은 벽체 위에 진흙과 볏짚을 섞어 초벌 미장을 끝내고 나면 그 이후 미장 방법은 여느 흙집 미장과 다를 바 없다.
 
우리 집 내부는 나와 아내가 미장을 했고, 외부 미장은 동네분들이 오랜만에 젊은 내외가 이사 들어온 것을 기뻐하며 울력(품앗이)으로 도와주셨다.
 
"옛부터 흙 한 덩이 밥 한 덩이란 말이 있어. 다 밥 심으로 짓는 거요."
 
마을 분들이 울력으로 미장을 도운 날 오랜만에 마을엔 잔치가 벌어졌다.
 
말처럼 벽에 바른 흙덩이만큼 푸짐한 정이 오갔다. 돈 주고 사람 손 쓴 것보다 울력 뒤 잔치 차림이 더 나갔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 손 안 간 데 없는 우리 집이 제일 복 받은 집이 분명하다.
 
  
▲ 실내 석회로 마감미장한 실내
ⓒ 김성원
어스백
울력으로 지은 집
 
내외부 최종 미장은 석회로 마감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을 '하얀집'이라 부른다.
 
황토 흙집의 칙칙함 없이 산뜻하고 깨끗하다. 언제든지 하얀 벽 위에 새 색깔을 입힐 수 있을 터이다.
 
쌀부대 자루에 흙을 담아 지은 까닭에 울툴불퉁. 똑 바르고 깔끔한 맛 없이 투박하지만 밤낮으로 바뀌는 불빛에 하얀집이 아름답다. 더할 나위 없이 추운 겨울 밤에도 따뜻하고 포근하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이런 집을 지을 생각을 했어요?"
"어 이런 건 줄 잘 모르고 시작했죠. 하여튼 시작했으니까 끝내긴 해야했어요."
 
  
▲ 야경 어스백하우스 야경
ⓒ 김성원
어스백
  
▲ 야경 전남 장흥 용산면 관지리의 어스백하우스
ⓒ 김성원
어스백

덧붙이는 글 | 지난 2007년 3월 일산에서 전남 장흥으로 귀농하여 2007년 4월부터 10월까지 직접 어스백 하우스 공법으로 집을 지은 경험담입니다.

어스백 하우스(Earthbag House)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한국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 카페(http://cafe.naver.com/strawbalehouse) 어스백 하우스 코너를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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