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미술관에 도착하면 주위의 논과 미술관 뒤에 묵묵히 서있는 산이 눈에 들어온다. 박수근 미술관은 그 속에 묻혀서 그 존재감이 희미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돌로 쌓여진 석축으로 착각되어지는 미술관의 외벽뿐 내부로 들어서기 전에는 미술관에 어떤 공간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피보나치 곡선을 따서 배치되어진 미술관을 감싸 안고 있는 듯한 뒷산과 작은 언덕의 연장으로 미술관은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박수근 미술관은 박수근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일상의 소재에서 그 아름다움을 이끌어낸 박수근 선생님의 작품과 같이 건축가 이종호씨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을 소재로 하여 미술관을 대지에 새겼다. 건축재료로 사용된 돌은 박수근 선생님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마티에르 기법을 건축화한 것으로 또 한번 미술관 건물에 박수근 선생님을 담아내고 있다.

돌로 쌓여진 낮은 담이 있는 바깥마당을 길게 돌아 들어가면 안마당과 만나게 된다. 미술관과 작은 언덕 그리고 뒷산에 의해 감싸 안기듯이 형성된 안마당은 미술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외부공간으로 자리한다. 안마당을 가로질러 미술관 밑을 지나가는 작은 시냇물과 철재다리, 몇 송이의 꽃들이 피어있는 화단과 그 속에 박수근 선생님의 동상이 있다.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입구 홀이다. 그리고 홀 넘어로 작은 마당과 계단실에서 흘러 들어오는 빛에 의해 홀은 풍만한 공간이 된다. 양 옆으로 작은 다실과 안내실이 있어 잠시 쉴 수도 있고 안내데스크의 친절한 아주머니와 이것 저것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홀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복도가 꺾여지는 저쪽 편으로 바닥에 거의 맞닿은 듯 조그마한 창으로 어슴푸레한 빛이 보인다. 그 빛을 좇아 복도를 들어가다 보면 그 창 맞은편으로 조그만 입구가 있다. 창에서 들어오는 빛에 이끌려 복도를 걷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공간이다.
 그리고 때마침 그 곳에서 꺾어진 복도는 창에서 흘러들어오는 빛과 함께 자연스레 입구로 사람을 흘러 들어서게 만든다.
 그곳은 박수근 선생님의 유품전시실로 그만큼 개인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으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려는 듯 입구 앞에 도착하고서야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유품전시관은 살아생전에 썼던 안경, 스케치북, 잡지와 스트랩북, 자녀를 위해 손수 만드신 동화책,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하얀 벽을 배경으로 검은 프레임에 담겨져 있는 박수근 선생님의 사진과 편지, 그리고 선생님의 자취는 하얀색과 검은색이 자아내는 간결함, 그리고 질서 속에 한두 개씩 어긋나 있는 액자의 배치에서 박수근 선생님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던 사람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다시 한 번 복도에 난 조그마한 창을 보며 박수근 선생님의 예술세계를 이야기 해주듯 왠지 모를 겸손함과 소박함을 느낀다. 하지만 복도에 들어서면 작은 창을 압도하는 엄청난 양의 빛에 흠칫 놀라게 된다.
 그렇게 또 한번 빛을 좇아 왼편의 복도를 따라 돌면 안마당으로 뚫린 커다란 창과 외부에 접해 있는 두 번째 작은 마당의 창으로 그 많은 빛이 한꺼번에 복도로 쏟아진다. 지금까지 닫혀져 있던 공간에 익숙했던 시각은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이번 복도는 꺾여 들어오기 전 복도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을 대신하여 안마당과 두 번째 작은 마당 쪽으로 난 큼지막한 창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둔갑, 안마당의 풍경을 하나의 액자에 담아내는 듯하다. 경사로로 되어있는 이 복도는 점점 높아지는 천장과 활짝 열려있는 창으로 인해 공간감은 확대되어 간다. 그리고 복도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내다보면 언뜻 다리위를 걷고 있다는 착각에 복도는 하나의 재미난 공간이 되어진다.

 

이번에 접하게 되는 전시실은 동산에서 이어져 내린 언덕의 아랫부분이다. 그 곳은 복도의 끝에 있는 기획전시실로 지금까지 미술관 내부에 있던 그 어느 공간보다도 높고 넓다. 지금까지 좁은 복도를 따라 돌다 갑자기 확대된 공간은 우리들에게 개방에 의한 공간적인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복도의 벽이 끝나고 안으로 접힌 모퉁이를 지나면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이 우리를 이끈다. 이 빛은 미술관 반대쪽의 계단실과 묘한 수직적 대칭을 이룬다. 전시실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온 길을 뒤돌아보면 2개의 개구부와 복도가 각각의 풍경을 담고 있는 액자처럼 느껴진다

기획전시실에서 안마당으로 연결되는 문을 통해 미술관을 빠져나온다. 미술관의 외벽을 따라 안마당을 거닐다 보면 상층으로 연결되는 계단과 만나게 된다. 상층을 거닐면서 양구와 미술관으로 이어져오는 산 뒷자락과 언덕을 본다. 풍경을 구경하다보면 입구 홀로 이어지는 계단실에 접어든다. 스틸과 유리로 둘러싸여 높게 솟아있는 계단실은 그 동안 수평적인 미술관의 공간 전개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자극을 가져다주는 수직적인 공간이다. 오픈 된 계단실의 상부를 통해 들어오는 충만한 빛은 거친 황등석 벽면을 타고 내려 입구 홀로 스며든다.

 

이렇게 빛과 공간의 흐름들 좇아 가다보면 어느 순간 미술관을 전부 돌아보게 된다.

 

다시 미술관을 나오면 이제는 그 앞을 흐르는 조그만 시냇물과 그 위에 놓여진 철재다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왠지 모를 호기심에 다리를 향해 걷게 된다. 펀칭매탈로 만들어진 다리의 바닥판은 그 밑을 흐르는 시냇물에 어지럽게 반사되는 빛들에 의해 우리를 즐겁게 해주며, 다리 난간도 미술관이 들어선 Solid된 공간을 향해서는 철재판으로, void된 미술관의 반대 공간에 대해서는 가는 철재봉으로 되어 있어 각 다리난간들이 면하고 있는 공간들의 속성을 보여주면서 또 하나의 재미를 더해 준다.

길을 따라 다시 걸으면 이제는 조금은 높은 듯한 언덕이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 그곳에 전망대가 있다. 철재로 된 전망대라서 그런지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란 언덕에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녹슨 철재의 투박함에 왠지 모를 친근감도 느껴진다.

 

언덕의 정상에 올라서면 미술관의 상층부에서 봤던 주변 전경들이 더욱 확장되어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들과 그 흐름의 선들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한 미술관은 자연과 인공물이라는 차이를 넘어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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